카탈로니아 찬가

1936~1939년 스페인 내전이 배경

스페인은 1936년 인민 전선 공화파가 선거에서 승리 한다.

그러자 프랑코 장군이(아프리카 파견군 총사령관)이끄는 군대가 반란을 일으켜서 스페인 내전으로 휩쓸린다. 이름은 국내전이지만 사실 국제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군부 프랑코장군은 카토릭 교회, 부유한 브루조아, 이탈리아, 나찌 독일로부터 도움을 받고

이민전선 공화파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노동자, 무정부주의자, 멕시코 소련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또 스페인 내전 당시 유럽에서는 인민 전선 공화국 정부를 지지하는 많은 지식인 의용군으로 참전한다.

세계 각지에서 좌익 진영과 극우 파시즘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들 약32000명으로 구성된다.

이것이 국제여단이디

앙드레 말러, 어네스트 헤밍웨이도 스페인 내전에 종군기자롤 왔다가 게릴라로 활동하고 그 경험으로 쓴 책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다. 조지오웰도 내전에 참여 하면서 일기로 쓴 것이 카탈로니아 찬가이다.

조지 오웰도 영국 신문기자로 기사를 쓰기 위해 왔다가 통합 노동당의 일원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여한다.

이유는 그 시기 (193612월말) 그 분위기에서는 그것이 해볼 만한 가지가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는 카탈로니아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다.

혁명은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중이었다. 바르셀로나는 상황이 깜짝 놀랄 만하고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그는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은 도시에 들어가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좀 크다 싶은 건물은 거의 노동자들이 장악했다. 건물마다 빨간색 깃발이나, 검은색과 빨간색이 섞인 무정부주의자들의 깃발이 드리워져 있었다. 교회는 내부가 거의 박살났고 노동자 무리들은 여기저기서 조직적으로 교회를 철거했다. 상점과 카페마다 집산화 되었다는 글이 붙어 있고 구두닦이들의 점포조차 집산화 되어 빨간색 검은색으로 칠해 놓았다. 웨이터와 매장 감독들은 손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동등한 입장에서 손님을 맞이했다. 굴종적인 말투나 격식을 차린 말투까지도 일시적으로 사라졌다. 낮 동안은 물론이고 밤 늦게까지 확성기에서 혁명가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가장 신기한 것은 겉으로 보면 그 도시의 부유한 계급이 실질적으로 멸절된 곳이었다. 소수의 여자와 외국인들을 제외하면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거의 모두 파란 작업복을 입거나 의용군 군복을 약간 고쳐 입었다. 이 모든 것이 신기했고 감동적이었다. 이해 못하고 마음에 들지 않은 면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즉시 그 도시의 모습이 싸워서 지킬 만한 가치가 있다고 확신했다. 또한 그는 눈에 보이는 모습이 전부라고 믿었다. 그것이 정말로 노동자들의 국가이며 모든 브르주아지는 달아났거나, 죽임을 당했거나 아니면 자발적으로 노동자들의 편으로 넘어왔다고 믿었다. 많은 수의 부유한 부르주아지가 기회를 엿보며 당분간 프롤레타리아 행세를 하고 있을 뿐임을 깨닫지 못했다.

도시는 전쟁으로 흉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생필품은 부족하고 특히 빵이 부족하여 빵을 구하려는 줄은 수백 미터씩 늘어서곤 했다. 생활비는 매우 낮았으나 눈에 띄게 곤궁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고 거지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혁명과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갑자기 평등과 자유시대로 들어섰다는 느낌이었다. 인간은 자본주의 기계의 톱니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평등의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레닌 병영에서 형식적으로는 전선에 가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

점차 신병에게 제복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딱히 제복이이라고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제각각복 )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을지 모르겠다. 제복은 이 공장 저 공장에서 만들어 지급했다.

셔츠와 양말은 면으로 만든 형편없는 제품으로 추위를 이기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교육은 연병장 훈련인데 가장 어리석고 낡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우향우, 좌양좌, 뒤로 돌아, 차려 자세로 3열종대 행진 등, 내가 열다섯 살 때 배웠던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들이었다. 병사를 훈련시킬 기간이 며칠밖에 없다면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숨는 방법, 열린 공간으로 전진하는 방법, 보초를 서고 흉벽 쌓는 방법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기 다루는 법, 그러나 마음만 뜨거운 어린 무리는 며칠 후면 전선에 내 던져질 것임에도 소총을 쏘거나 수류탄의 핀을 뽑는 방법조차 아직 배우지 못했다. 무기가 없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자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여전히 갈 데 없는 오합지졸이었음에도 상부에서는 그들이 사람들 앞에 내 놓을 만큼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아침이면 에스파냐 광장 너머 작은 산에 있는 공원까지 뻣뻣한 자세로 가슴을 쑥 내밀고 행군을 했다. 군인답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모두 비무장이었으며 제복은 여기 저기 찢어져 누더기나 다름이었다. 의용군 체계 전체에 결함이 있었다. 병사들은 어중이떠중이다. 그들 가운데 몇 퍼센트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들이었다.

부모들이 열다섯 살짜리를 소년 의용군에 넣으려고 데려왔다. 부모들은 의용군 임금인 일급 20페세타 때문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내일 내일 여러 번 연기가 이루어진 뒤에 갑자기 두 시간 뒤에 전선으로 출발한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무시무시한 소란 끝에 전선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다시 화물차를 타고 알쿠비엘레에 도착했다.

전선 근처는 전쟁의 특유한 냄새가 났다. 배설물, 음식 썩는 냄새 마을은 요새와 같은 모습이다. 부대가 끊임없이 오고가는 바람에 말 할 수없이 더럽고 수세식 변기나 하수도 같은 것이 없었다. 발 조심하지 않고 마음대로 걸어 갈 수 있는 땅을 1평방미터도 찾기 힘들었다. 교회는 변소로 사용하지 오래였다. 알쿠비에레에 머문 지 사흘째 소총이 도착했다. 그는 소총을 보고 그만 질려버렸다.1896년에 독일에서 제작된 모제르 소총이었다. 40년도 넘은 것이다. 전체적으로 녹이 슬어 노리쇠는 뻑뻑하고 나무로 만든 총신 받침은 금이 가 있었다. 총구는 봐도 부식이 심해 고쳐 쓰기 어렵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는 바르셀로나에 있는 동안 추위에 대한 공포로 내내 시달렸다. 참호 속의 추위, 소름끼치는 새벽의 경계근무, 얼어붙은 소총을 들고 오랜 시간 서 있어야하는 보초근무, 군화를 덮는 차가운 진흙 등을 생각하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그와 함께 행군하는 사람들을 보며 공포를 느꼈다. 우리가 얼마나 형편없는 오합지졸이고 공화국을 수호한다는 자들이 다룰 줄도 모르는 낡아빠진 소총에 남루한 차림의 아이들 무리라는 사실이 두렵게 느껴졌다. 전선에서 파시스트 참호는 7백미터 거리에 있었다. 이런 거리라면 소총이 무용지물이다. 파시스트는 개미처럼 보였다. 전선을 보고 그는 심한 메스꺼움을 느꼈다. 이것이 전쟁인가? 적과도 만날 수가 없는데....

참호전에서는 다섯 가지가 중요하다. 땔감, 식량, 담배, 초 그리고 적이다. 적이 가장 나중이다. 밤에는 늘 기습 공격을 염두에 둘 수 없었기 때문에 불안했다. 그러나 그때를 제외하면 아무도 적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은 멀리 떨어진 검은 벌레들에 지나지 않았다. 이따금씩 뛰어다니는 것이 눈에 뛸 따름이다. 실제로 양군이 가장 관심을 쏟는 문제는 추위를 쫓는 것이다. 그는 스페인에 있을 때 전투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는 1월부터 5월까지 아라곤 전선에 있었다.1월부터 3월까지는 테루엘 지역을 제외하고는 그쪽 전선에서는 거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3월에는 에스카 주위에서 큰 싸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작은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나중에 6월에는 우에스카에서 엄청난 공격이 있었고 그때 수천 명이 죽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일이 일어나가 전에 부상을 당해 불구가 되었다. 물론 심한 기관총 사격은 많이 받아보았다. 그러나 먼 거리에서였다. 그가 있던 사라고사 주위의 산은 전선이고 교착 상태였기 때문에 권태와 불편이 섞인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도시 사무직원의 생활처럼 하루하루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거의 규칙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보초근무, 정찰, 참호 파기 참호파기 정찰 보초근무. 파시스트 국왕파가 주둔하는 산꼭대기마다 초라하고 지저분한 병사들이 깃발 주위에 똘똘 뭉쳐 벌벌 떨면서 온기를 유지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밤낮으로 의미 없는 총알들이 텅 빈 골짜기를 가로 질렀다. 그러나 그 총알이 사람 몸에 맞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는 을씨년스런 겨울 풍경을 둘러보며 이 모든 쓸모없는 짓에 놀라곤 했다.

어떤 결말에도 이르지 못하는 전쟁! 10월쯤에는 그 산들을 차지하기 위한 야만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다가 이제 병력과 무기, 특히나 포가 부족하여 대규모 작전은 불가능해졌다. 각 부대는 자기가 차지한 산꼭대기에 땅을 파고 주저앉아 버렸다. 의용병들은 왜 공격을 허락해 주지 않는지 알고 싶어 늘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적이 먼저 도발하지 않는 한 오랫동안 전투가 벌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것은 전쟁이아니라 이따금씩 사람이 죽어나가는 희가극이라 했다.

그는 전선에서 백오십 일을 보낸 뒤에 휴가를 얻었다. 그 당시 전선에서 보내는 이 기간이 자기 인생에서 무익한 시기로 여겨졌다. 파시즘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의용군에 입대 했으나 제대로 싸워 본 적이 없었다. 마치 수동적인 물체처럼 그냥 존재하고만 있었다. 배급받은 식량에 보답하기 위해 한 일이라곤 기껏 추위와 수면 부족을 견딘 것뿐이었다.

기차를 타고 바르셀로나에 들어서자 파리나 런던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분위기를 느꼈다. 혁명적 분위기가 사라졌다. 영국에서 갓 건너온 그에게는 바르셀로나가 상상했던 이상으로 노동자의 도시를 닮았다. 그러나 그 곳은 다시 평범한 도시로 변했고 노동 계급의 지배를 보여주는 외적인 표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군중의 변화는 깜짝 놀라 정도였다. 의용군 제복과 푸른 작업복은 거의 사라졌다. 모두들 스페인 재단사들이 만든 멋진 여름 양복을 이고 있었다. 어디를 가나 뚱뚱한 부자, 우아한 여자 늘씬한 차들이 눈에 띄었다.

며칠 동안 그는 수없이 많은 증거들을 통해 자신의 첫인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도시 전체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사람들 즉 민간인들이 전쟁에 관심을 잃고 또 하나는 빈부 상하의 계급 구분이라는 일반적인 사회현상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 했다는 것이다. 전쟁에서 패하고 싶은 사람은 없으나 대다수가 전쟁이 끝나기를 바랬다. 정치적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프랑코와의 싸움보다도 무정부주의자와 공산주의자의 사이의 내분을 훨씬 더 강하게 의식했다. 도시의 표면적인 모습 속에 정치적 경쟁과 증오라는 무시무시한 감정이 분명히 자리 잡고 있었다. 혁명이 진전되기를 바라는 사람들과 혁명을 예방하기를 바라는 사람들 사이의 반목이었다. 결국 무정부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반목이다.

파시스트 프랑코군과 한편이 되어 싸웠는데 이제 대항하던 한편이 갈라지고 있는 것이다.

내분이 생기고 집안싸움이 난 것이다.

카탈로니아 전역에서 소규모 충돌이 일어났다. 경찰 치안대는 무정부주의자들의 요새를 공격하고 노동자연맹과 노동계급을 추적 하면서 교회탑을 점거하고 지나가는 시민들을 무차별 사격을 한다. 사태는 점점 나빠져서 무정부주의자는 총을 들고 거리를 다니고 있다.

그는 휴가로 나와 있던 의용군과 같이 다시 전투에 휘말린다. 그들은 치안대를 상대로 싸웠다 호텔 첨탑건물 옥상에 진을 치고 소총을 든 채 보초를 서거나 교대를 한다 그는 이 시기가 평생 견디기 힘든 시간들에 속했다. 시가전으로 보낸 이 고약한 며칠보다 더 역겹고 더 환멸스럽고 또 피 말랐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 이 무정부주의자와 경찰 사이에 소동이라고 했지만 어느 쪽도 경계를 풀지 않아 그냥 대치 상태가 이어진다.

며칠 후 분위기가 바꿔서 그냥 모두 생업으로 돌아가라는 호소를 했고 무정부주의자의 지도자들도 같은 메시지로 방송을 내보냈다. 아무도 전면적 내전을 원하지 않았다. 그랬다가 프랑코에게 패배 할 것을 걱정했다. 정부는 통일 노동당을 불법단체로 규정했다. 통일 노동자당이 가장 약한 당이고 이 도시 전에 희생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의 휴가를 끝날 쯤 거리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무정부주의자들의 깃발이 내려지고 카탈로니아 깃발이 펄럭이었다. 그건 노동자들의 패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모두 의미 없는 싸움에 싫증을 냈고 이 싸움에서도 현실적인 결론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사흘 후 그는 전선으로 돌아왔다. 예전처럼 순진하고 이상주의적인 관점에서 그 전쟁을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스페인에서 몇 주 이상 보낸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어느 정도씩은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바르셀로나에 온 첫날 만났던 신문 특파원이 <다른 전쟁과 마찬가지로 이 전쟁은 사기요> 그 말이 점점 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추측할 수 있었다. 카발레 정부가 무너지고 공산주의자들의 영향력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우익 정부가 들어서리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새로운 정부는 단번에 노동조합의 힘을 분쇄하는 일에 착수할 터이다. 나중에 프랑코에게 승리해도 전망은 장밋빛이 아니다.

신문에서는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눈속임이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전쟁이 끝났을 때 영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민주주의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후 스페인은 완전히 분열되고 탈진한 나라가 될 것이다. 이 땅에는 독재가 들어 설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노동자 계급이 정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사라져버린 것이 명백하다. 그것은 곧 전체적인 움직임이 일종의 파시즘을 향하여 나아갈 것이라는 뜻이다.

이제 남은 것은 악랄하기 짝이 없는 프랑크의 독재였다

그는 전선에서 부상을 입었다. 총알이 목을 관통한 것이다. 치료를 받으면서 여러 병원을 거쳐 드디어 바르셀로나로 후송한다는 발표를 들었다 그는 간신히 바르셀로나에 있는 아내에게 도착 전보를 칠 수 있었다. 기차가 출발 하고 나서 기관사가 바르셀로나가는 것이 아니라 타라고나로 간다고 한다. 기관사의 마음이 바뀌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스페인답군!> 그는 생각했다.

어느 정도 부상이 회복되고 통증이 조금 가라앉자 그는 아내와 가능한 한 빨리 영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는 이 모든 곳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엄청난 욕구를 느꼈다. 정치적 의심과 증오가 뒤섞인 끔찍한 분위기로부터, 무장한 사람들이 떼 지어 몰려다니는 거리로부터, 공습, 참호 기관총, 시끄러운 전차, 우유 없는 차 기름을 넣은 요리, 담배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스페인과 관련된 그가 아는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고 싶었다.

종합병원의 의사들은 그에게 의학적으로 전투 부적격자라고 확인해 주었다. 그러나 제대증을 얻으려면 전선 근처 병원의 군의관에 출두한 다음 시에타모로로 가서 서류에 통일노동자당의용군 사령부의 직인을 찍어야 했다. 트럭을 타고 시에타모로에 가서 기가 죽고 곤혹스런 기분으로 정신없고 짜증나는 걸음을 한 끝에 겨우 제대증을 받았다. 돌아오는 길도 험난했다. 병원 침대에서, 도랑에서, 시립 숙박소에서 잠을 잤다. 운송수단은 지나가는 트럭에 올라 타야 한다. 길가에서 서너 시간을 기다리기도 하고 온갖 고생을 하며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니 아내가 그의 귀에 대고 빨리 나자고 한다. 통일 노동자당이 불법화되고 <트로츠키주의자>로 몰아 거의 다 감옥에 가고 총살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페인을 구하기 위해 참전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고 추위와 굶주림을 견딘 의용군들을 투옥시키고 총살하는 것이다. 그는 통일노동자당원이어서 피하지 않으면 체포된다. 투옥된 당원 중에는 가족, 국적, 생계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 파시스트와 싸우기 위해 온 사람도 있다.

그는 통일 노동자당이란 활자가 찍혀있는 의용군 카트와 동지들과 찍은 사진을 찢었다. 그러나 제대증은 가지고 있어야하는데 제대증도 위험했다. 거기는 29사단 직인이 찍혔는데 29사단이 곧 통일 노동당인 것이다. 그러나 제대증이 없으면

탈영병으로 체포된다. 그는 아내와 함께 스페인을 빠져 나갈 방법을 강구했다. 조만간 투옥될 것이 틀림없는데 그곳에 남을 이유가 없었다. 여권을 정리하려면 이틀은 걸릴 것 같았다. 스페인을 떠나려면 세 군데의 관공서에 여권 도장을 받아야 했다. 경찰서장, 프랑스영사, 카탈로니아 이민국. 물론 경찰서장은 위험했다. 그러나 영국 영사라면 그가 통일 노동당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도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히 <트로츠키주의자>란 혐의로 명단이 있을 것이고 그의 이름도 거기에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운이 좋으면 명단 보다 그들이 먼저 국경에 도착 할 수도 있다. 서류가 완벽해도 국경에서 걸리면 체포된다. 그는 아내만 호텔로 보내고 다음 날 영국 대사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호텔에 가면 체포 되고 스페인 감옥에 들어가면 비참하고 열악하여 살아남기가 힘들다.

제대증을 얻기 위해 닷새 동안 짜증나는 여행을 하면서 도저히 잘 수도 없는 곳에서 잤다.

침대에서 자기를 간절히 바랬는데 갈 곳이 없었다. 잘 곳을 찾아 어둠 속을 헤맸다. 이윽고 교회와 마주쳤다 불에 타서 무너진 교회 잡석더미 속에서 누울 공간을 찾았는데 깨진 돌덩이들 때문에 등이 편하지 않았다.

다행히 친절한 영국 영사 덕분에 여권에 도장을 받을 수 있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슬아슬하게 여섯 달만해 프랑스 땅을 밟았다. 프랑스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다시 영국으로 왔다. 영국 남부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산뜻한 풍경을 지닌 고장일 것이다. 그쪽을 지날 때, 임항 열차의 편안한 쿠션 위에 앉아 평화롭게 배 멀미로부터 회복되고 있을 때는, 어딘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일본의 지진, 중국의 기근, 멕시코의 혁명? 걱정마라! 내일 아침이면 현관에 우유가 놓여 있을 것이고 <뉴 스테이츠먼>이 나올 것이다. 이곳은 내가 어린 시절 알던 영국 그대로이다. 철로 때문에 파헤친 곳은 야생화로 덮여 있다.

모두가 영국의 깊고 깊은 잠을 자고 있다. 나는 때때로 우리가 폭탄의 굉음 때문에 화들짝 놀라기 전에는 결코 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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